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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찬송가 에세이 ⑬-"예수님의 아늑한 품에 품어주시는 것과 같은"

관리자
2022.03.03 01:52 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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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⑬
      제284장  “주 예수 해변서 떡을 떼사”
      작사  매리 앤 래스베리(1841-1913)    작곡  윌리엄 피스크 셔원(1826-1888)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광야로 가시사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시느라 주리신 때였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며 유혹했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4:1-4)
 이 장면을 예수님의 전기를 입체적으로 쓴 <예수>의 저자 오병학 목사님은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어야 하는 주님이 받은 유혹이 민중을 위해서였다고 재미있는 각색을 한다. 들판에 널려있는 많은 돌멩이로 떡을 만들라는 유혹을 받았을 때 떡을 만들어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것이 곧 그리스도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리 굶주리더라도 먼저 필요한 것은 생명의 말씀이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것은 역시 떡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할 일은 떡을 만들어 내는 일 보다 진리의 선포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곧 사단아 물러가라고 소리치셨다.
 그렇더라도 역시 굶주리는 군중을 눈으로 보고는 못 견디시는 예수님이었다. 부녀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오천명이 모인 한적한 바닷가 빈 들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굶겨 보낼수가 없으셨다. 돌로 만든 떡덩이가 아닌 한 어린이가 내놓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굶주린 그들을 배불리 먹이실수 있으셨다.
 마태복음 14장13-21절의 말씀의 현장을 노래한 것이 찬송가 제284장이다.

 <1절> 주 예수 해변서 떡을 떼사/무리를 먹이어 주심 같이/영생의 양식을 나에게도/풍족히          나누어 주옵소서
 <2절> 생명의 말씀인 나의 주여/목말라 주님을 찾나이다/해변서 무리를 먹임 같이/갈급한          내 심령 채우소서
 <3절> 내주여 진리의 말씀으로/사슬에 얽매인 날 풀으사/내 맘에 평화를 누리도록/영원한          생명을 주옵소서
 <4절> 성령을 내맘에 보내셔서/내 어둔 영의 눈 밝히시사/말씀에 감추인 참 진리를/깨달아          알도록 하옵소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현장은 오늘날 갈릴리의 가버나움 입구 타브가 마을의 베드로 수익권교회 곁에 오병이어 기념교회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다. 바닥에 물고기 두 마리와 떡이 담긴 바구니가 모자이크로 장식된 비잔틴 시절의 교회 터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교회이다.

 찬송가 284장은 1877년 매리 래스베리가 작사했다. 그녀는 원래 화가였으며 미국 감리교회학교 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편집인이었다. 미국의 뉴욕주 차우타우쿠어 호수에서 열리는 감리교회 캠프 집회에 참석하는 기회에 그의 작품에 마지막 손질을 하리라 서둘고 있을때였다. 그의 나이 32세-오랫동안 화실에서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느라 피로가 겹쳐 휴양이라도 떠나리라고 생각 해마다 열리는 차우타우쿠어의 캠프에 참석했던 것이다. 감리교회의 목사인 아버지와 역시 감리교회 목사인 두 오빠의 권유도 있었다.
 마침 집회에는 빈센트 감독이 참가하고 있었는데 그는 교회학교 교과를 작성하기에 매우 바빴으며 래스베리양이 자원하여 감독의 잔무를 도와드리기로 했었다. 그런데 빈센트 감독이 차우타우쿠어 캠프에 알맞은 저녁 기도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래스베리는 저녁때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바야흐로 해가 서산으로 지려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호수는 고요했으며 곧 어둠이 찾아와 예수님의 아늑한 품에 품어주시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갈릴리 해변과 같다고 느껴졌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모인 무리에게 떡을 먹이시듯 생명의 말씀으로 배부르게 해 달라는 간절한 시를 쓰자고 생각했으며 이때 작시한 것이 1-2절이었다.
 그녀는 곧 시로 옮겨 “서산으로 해 질때”라는 제목을 달아 캠프의 성가대 지휘자 셔원에게 주었다. 그리고 원고를 받아든 셔원이 곡을 붙인 것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찬송으로 탄생케 된것이다. 셔원은 로웰 메이슨에게 사사 음악을 배운 후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학교의교수가 되었다. 성가대를 지휘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봄 창영교회 성지순례단은 갈릴리 호반에서 일박한 새벽 호숫가에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이 찬송을 불렀다. 이 예배에서 일행은 말씀의 떡을 배불리 나누었다. 떡덩이가 아닌 생명의 떡으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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