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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에세이 ⑱-“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찬송

관리자
2022.04.08 00:57 8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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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⑱-“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유래”
      제310장 “저 밭에 농부 나가”
      작사  마티아즈 클라우디우스(1740-1815)  작곡  요한 슐쯔(1747-1800)

 <버지니아/그것은 지상 유일의 파라다이스/자연은 자비로워/새고기와 사슴고기와 물고기를 주고/풍요로운 대지는/힘들이지 않고/한해에 세번 수확을 가져다 주어/그 풍족함이 기대에 웃도누나/탐스러운 포도는/보라빛 송이의 왕관을 달고/히말라야 삼나무는 높이 솟아/하늘에 입맞출것 같고/상록수와 소나무는/…>
 1607년5월 런던척식회사의 이민선이 제임즈 강에 닿았다. 상륙한 인원은 105명-런던을 떠났을 때의 승선자 144명중 39명이 항해 중에 죽었다. 더욱이 뭍에 발을 딛고 보니 예상외로 무더운 데다 물 사정이 좋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말라리아가 창궐할 것 같은 습지와 밀림 그리고 인디안의 공포등- 그 여름에 일행의 절반이 죽고 가을부터 아사자가 발생 연말에는 겨우 32명이 남았다. 그 이전 그들이 새땅으로의 모험에 나섰을 때 희망에 부풀어 지은 시가 서두의 “풍요의 뿔”이었다.
 그런데도 신대륙을 찾는 이민이 꼬리를 물었다. 당시 필그림 피더즈라는 102명의 청교도들도 그중의 하나였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에 몸을 실었으나 이들 역시 험난한 자연과의 싸움에서 견디어 내기 힘들었다. 반년도 못되어 50명이 죽었다. 일년 후에는 온전한 자가 6-7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나무를 베고 토지를 개간 씨를 뿌렸다. 그리고 그해 가을 한해 농사를 수확 새 땅에서 얻은 첫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올릴 수 있었다. 실로 눈물과 감사가 뒤범벅이 된 감동의 현장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유래이다. 이 관습이 점차 확장되어 나가더니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이 미국 전역의 연례적인 축일로 정해졌다. 우리나라는 1914년부터 교회에서 11월의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 예배를 통해 감사의 생활화가 다짐되고 있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찬송시는 독일의 마티아즈 클라우디우스가 지었다. 1782년11월 그가 펴낸 시집 제4부의 “바울 얼드만의 축제”라는 제목에 28페이지나 되는 긴 노래를 “농부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는데 독창과 합창으로 섞어 부르는 17절로 되어 있다고 한다. “바울 얼드만의 축제”란 일년중 가장 큰 축제인 추수제를 말한다.
 위대한 찬송가 작가 마티아즈는 한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다가 돌아온 중생의 신앙인이다. 그는 독일 북부 홀스타인의 뤼벡 부근 라인펠트에서 루터교회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희망에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예나 대학에서 동생과 함께 신학교육을 수업했다. 그러나 한 영주의 농사책임자로 있을 때 자유주의자들에게 유혹되어 목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끝내 신앙까지 버리게 되었다. 괴테와 실러등을 중심한 당시의 자유주의 즉 합리주의는 어떤 종교든 사람의 이성에 호소하지 않는 것은 미신이요 허위이며 그리스도는 거룩한 구세주가 아니라 다만 도덕적 사표로 존경하면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1769년 그의 아우가 폐결핵으로 죽고 그 마저 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진심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병에서도 차츰 회복되었다.
 결국 그는 좋은 대우를 받았던 영주의 수하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신앙인이 되어 찬송가 작가로 변신했다.
믿음의 사람은 사회에 봉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면서 자신은 문화와 출판을 통해 봉사하겠다고 다짐 한 문학지의 편집인이 되었다.
 
 찬송가 310장은 전편에 걸쳐 힘이 솟아난다. 농사짓는 농부의 자세가 사뭇 전투적이다. 농사도 하나님의 병사처럼 전투하듯 하지 않으면 아니되는가. 특히 유니존으로 불리우는 부분에서는 박력이 넘쳐난다. 이 곡은 요한 슐쯔가 작곡했다. 그는 독일 서부의 니더 작센주 뤼네부르크의 제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올갠 공부를 했으나 부모는 그가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자 15세때에 가출했다. 그러나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 연주자로 성공할수 있었으며 훗날 덴마크 왕실의 궁정음악 지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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