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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빈의 생애와 교회관 1509년~1564년

관리자
2024.05.25 10:11 1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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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칼빈의 생애
칼빈은 1509년, 프랑스 북부의 노용에서 태어났다. 파리, 오를레앙, 부르제 대학에서 수학하여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의 찬양자가 되었다. 그는 1532년에 인문주의 학자다운 저서를 발표했다. 그것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관용론>에 관한 주석이었으나, 그가 기대했던 만큼의 반응은 일으키지 못했다. 이 무렵에 칼빈이 회심했던 것 이다.

그는 곧 신학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다. 1533년 그는 파리 대학의 신임 학장으로 취임한 니콜라스 콥의 온건한 프로테스탄트적 연설에 연루되었다. 칼빈은 살던 곳을 급히 떠나야 했다. 칼빈은 연구와 저술을 위해 프랑스를 떠나 바젤에 정착했다. 1535년 여름에 그는 <기독교 강요> 초판을 완성했으나, 그의 학자로서의 평화롭던 생애는 끝나게 되었다. 1536년에 그는, 어떤 지방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부득이 우회하여 제네바를 거쳐 스트라스부르크에 가게끔 되었다. 칼빈이 제네바를 잠시 들르게 된 이 우발적 사건이 유럽사의 극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제네바는 일부 정치적 이유로 즉시 종교개혁을 받아들였다. 칼빈은 그 곳에서 단 하룻밤만 지내기로 계획했으나, 제네바 개혁자들의 지도자인 파렐은 그를 그 곳에 머물도록 강요했다.

시의회는 1536년에서 1538년까지 제네바에서 사역하게 된 <그 프랑스인> 칼빈의 임용에 주시했다. 이 곳에서도 그는 여전히 성급했고 미숙했다. 교회 정치 문제에 대한 어떤 논쟁으로 인해서 추방당하자, 그는 연구 생활을 위해 바젤로 물러나기로 했다. 그러나 후에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부쳐는 그가 프랑스 난민의 적은 회중을 위해 사역하도록 스트라스부르크로 오라고 강요했다. 칼빈은 부쳐가 파렐이 했던 것처럼 요나의 예를 들어 위협할 때까지 응하지 않다가, 마지 못하여 이를 수락했다. 결핍은 고사하고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보낸 몇 년 동안은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는 부쳐와 다른 개혁자들과 접하는 것을 즐겼고, 이것에서 큰 유익을 얻었다.

그는 1539년에서 1541년에 걸쳐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캐톨릭 사이에 개최된 회담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그는 그 기간 중에 멜랑히톤과 친교를 갖게 되었다. 그는 또한 재침례파에서 개종한 과부를 아내로 얻었다. 그런데 칼빈이 그 곳에 머무는 동안에 제네바 교회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결국, 1540년에 절망에 빠진 행정 장관들은 칼빈의 귀환을 요청하였다.

칼빈은 1541년에 제네바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두려움은 당연했다. 거기에서는 제네바 교회의 영적 독립과 엄격한 권징의 시행을 위해 싸워야 될 장기간에 걸친 쓰디쓴 투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시행하고자 했던 규칙들(옷차림에 대한 규정과 무도회의 금지를 포함한)은 대개가 중세기의 전통적 습관이었다. 사실상, 새로운 것은 그것들은 시행하려는 그의 결의였다. 즉, 귀족 계층도 면제되는 일이 없이 제네바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시행하려는 결의인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칼빈은 행정 장관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받아야 했으나, 결국 그의 반대자들은 배척받게 되었고, 그리고 칼빈을 옹호하는 시의회가 들어서게 되었다. 비록 그의 요구 사항이 항상 지시대로 움직여지지는 않았을지라도, 그의 생애의 최후 몇 년 동안은 그가 높이 존경받은 기간이었다. 그는 1564년에 세상을 떠났다.

칼빈의 신학사상

칼빈의 성경관

하나님에 관한 모든 지식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 칼빈은 성경을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칼빈은 성경을 "성령의 학교"라고 믿는다. 그 저자들은 성령의 기구요 필기자이다. 칼빈은 성경을 인간의 언어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 성경은 성령의 내적 증거로 말미암아 확증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영감하신 그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조명하시며 계시된 진리를 마음속에서 확증시키기 위하여 임재하실 때에만 그러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칼빈은 믿고 있다.

칼빈은 루터와 같이 성경이 교회의 기초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칼빈은 말씀과 성령의 단일성을 강조하고, 이와 반대되는 두 오류를 지적한다. 첫째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을 교회에 예속시켜 조명의 역할을 저하시켰다고 하였다. 둘째로, 칼빈은 당시의 광신주의자들 중 어떤 이들이 소위 영에 매혹되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멸시한다고 하였다.

 칼빈의 영혼관

칼빈의 영혼관은 인간창조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인간은 창조의 면류관이다. 그것은 인간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다같이 참여하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칼빈은 헬라 철학의 삼분설과는 달리 이분설의 주창자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여기서 영혼의 세가지 구별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영혼이 불멸하다는 점이요, 둘째는 창조되었다는 점, 셋째는 인간의 두 부분 중에서 영혼이 보다 고상하다는 점이다. 칼빈이 입증한 바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증거는 첫째로 양심이다. 둘째는 하나님에 관한 인식 자체는 이 세계를 초월하는 영혼의 불멸성을 충분히 입증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세째로 칼빈은 인간 정신의 여러가지 고귀한 기능들이 또한 그 불멸적인 실재의 증거가 된다고 보았다. 네째로 영혼의 불멸성을 입증해 주는 것은 수면이다. 다섯째로 칼빈은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하여 영혼의 불멸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칼빈의 칭의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하는 칭의교리는 종교개혁의 중심교리였다. 물론 이 교리는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이 교리를 올바른 입장으로 부활시켰을 뿐이었다. 이 칭의교리야말로 그리스도교와 모든 이교 사상을 구별지어 주는 특수한 교리인 것이다.

칼빈은 이신칭의 교리의 열쇠가 되는 구절이 고린도 후서 5:21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인은 이 의를 받아들임으로 의인으로 간주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책을 떠맡고 형벌을 받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상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이 의는 복음의 매개를 통하여 주어진다. 그리고 죄인은 이 의를 받아들임으로 의인으로 간주된다. 이 의가 복음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은, 행위를 전적으로 칭의의 조건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은 신앙의 의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동일시 하였다. 칭의와 화목은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칭의와 죄의 용사(容赦)는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용어이다. 이 주장을 지원하기 위하여 칼빈은 어거스틴의 말을 이용하였다. "이 세상의 성도의 의는 죄의 사유에서 오는 것이요, 그들의 덕이 완전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칼빈의 교회관

칼빈의 교회관은 그가 스트라스부르그(Strasburg)에 머물고 있는 동안(1538.8-1541.9) 성숙하여졌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의 전 20장중 19장에서 교회를 여러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칼빈은 부패한 로마교회를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중심으로 한 교회관을 수립하였으며, 이것을 혼란시키며 불순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하나 하나 개혁해 나아갔던 것이다. 그는 질서와 전통을 사랑하였다. 그는 순수하고 거룩한 교회를 변호하였으며, 어떤 혁명적인 것에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현실 속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롭게 형성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교회는 천사나 사람,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 그리고 국가와 종족에 관계없이 피택자 전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칼빈은 주장한다.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떤 근거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밀하신 선택"과 "내적인 부르심"은 칼빈의 교회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칼빈은 선택을 교회의 기초로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칼빈은 교회와 선택 교리를 연결시키고, 하나님의 선택과 섭리,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서 교회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선택 교리는 교회로부터 모든 종류의 거짓된 지주들을 빼앗음으로 교회로 하여금 세상 권세의 모든 공격에 대하여 무적의 대결을 하게 한다.

칼빈에 의하면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요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이 교회는 우리가 일생동안 다녀야 할 학교이다. 교회의 몸밖에서는 죄의 용서를 기대할 수 없으며 교회를 떠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 교회가 우리의 어머니요, 이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사상은 일반적인 루터의 주장과 일치한다.

 칼빈의 성례론

칼빈은 교회를 본질적으로 성례전적 교제로 보았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례는 두 가지가 있을뿐이다. 하나는 세례요, 다른 하나는 성찬이다. 세례는 우리가 씻음을 받아 정화는 것을 증거하며, 성찬은 우리의 구속을 증명한다. 두 성례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요약해주며, 죄의 사유와 구속을 의미한다. 성례는 말씀에 의하여 유효하게 된다고 칼빈은 주장하였다. 말씀없이는 성례의 요소들은 단순한 물이요 떡과 포도주에 지나지 않는다. 성례는 말씀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보충적인 것이지만, 말씀은 성례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은혜의 수단으로의 완성적인 것이다. 칼빈의 성례론은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성찬은 영적 행위이지만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실제적으로 참여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현재 육체적으로는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신비는 경외로 다루어져야 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칼빈의 기도론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칼빈은 말한다. 또한 신앙과 기도의 관련성을 강조한다. 기도해야 할 이유는 첫째, 하나님을 항상 찾으며 섬기겠다는 소원과 열의가 우리 마음 속에 붙일듯 하기 위해서이다. 둘째로 하나님께 알려 드리지 못할 부끄러운 욕망이나 소원이 우리 마음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은혜를 주실 때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넷째로, 우리가 구하던 것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으로 그의 인자하심을 더욱 열심히 명상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다섯째로, 기도로 얻었다고 인정하는 것들을 더욱 큰 기쁨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여섯째로, 우리가 연약한 때일수록 습관과 경험으로 그의 섭리를 확인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칼빈은 올바른 기도의 4가지 원칙을 설정하였다. 첫째 경외심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부족을 의식하고 회개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셋째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겸손히 죄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넷째 확실한 소망을 갖고 드리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칼빈의 윤리 사상

칼빈의 윤리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이다. 그 윤리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칼빈은 십계명 속에서 도덕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모두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리적 인식의 근거인 성경은 칼빈의 윤리사상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지며, 윤리의 근원이 된다. 성경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이며, 무오한 말씀이며, 그 기원을 하늘에 두고 신적 권위로 주어진 책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성경은 신자의 신앙생활의 안내자이며 모든 생활의 규범이요 표준이 되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안내자와 교사의 역할을 하게끔 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성경에서만 자신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칼빈은 삼위일체 신관에 따라 인간의 윤리생활을 하나님의 주권적 원리에 적용하였다. 그는 일관성 있게 인간의 윤리생활이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으며,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칼빈의 하나님 주권사상은 우리에게 확실성과 신뢰성, 신앙의 견고한 기초, 불안과 두려움에서의 해방, 그리고 적극적인 종교적 자유를 주었다

칼빈의 신학사상과
"칼빈이 진정으로 원했던 일은 무엇인가?"

"자신의 모든 신학적 작업에서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성경을 강론하는 일에서, 교회를 섬기는 일에서, 그리고 세계의 복리를 위하는 일에서,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칼빈의 참된 소원이었던 것이다.

이 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향력이다. 칼빈은 수 세기를 그리하고 있다. 그의 생각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뛰어 넘어야 한다. 칼빈의 위대한 시고와 지식과 그의 대단한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지만 칼빈 너머로 칼빈을 사용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할것이다. 칼빈을 사용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시대에도 누군가를 사용하시고 계신다. 아니면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가 누구인가? 나인가? 아니면 내 옆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가?

 하나님은 아무렇게나 일하시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일군을 준비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일을 하신다는 사실이다. 준비된 일군들이 되어야 한다. 내 자신이 하나님에게 칼빈처럼 쓰임받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나는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존재한다고 자위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하루 하루를 준비할 때 하나님은 결코 무심치 아니하실 것이다.

칼빈의 신학사상-신복윤 저-을 중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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