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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찬송가 에세이 ⑧-"어린이를 위한 찬송"

관리자
2022.01.27 00:16 8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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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⑧
      제298장  “실로암 샘물가에 핀”
      작사  히버 레지날드(1783-1826)    작곡  우드버리 아이잭 베이커(1819-1858)

 실로암 못은 예루살렘 성 밖 동남쪽에 있다.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옛 여부스 사람들의 샘 기혼에서 산 밑으로 수도를 뚫어 축조한 것이 실로암 못이다. 여기서 다시 성안으로 물을 공급하게 된다. AD8세기 앗수르의 산헤립왕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포위하리라는 위협을 받은 히스기야왕이 물 확보를 위해 축조했다. 오늘날 아랍인들의 지역이어서 그들은 “아인 실완”이라고 한다.
 성서에 나타나는 실로암의 가장 큰 사건은 예수님이 한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신 일이다.
길을 가시다 나면서 소경된 자를 만나자 땅바닥에 침을 뱉아 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주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요한복음 9:1-12) 예수께서 병자나 장애인을 고쳐준 이적은 대개 “일어나라” “걸으라” 하는 명령식이었는데 여기서는 하나의 절차를 더 거쳐야 했다. 소경은 그대로 믿고 따름으로서 고침을 받았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시각장애인의 눈을 고쳐주셨다는데 의미를 두기보다 예수님이 하신 진리의 말씀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해야한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이 사건으로 인해 실로암은 오늘날 크리스챤에게 가장 흠모하는 장소의 한곳이 되었다. 성지순례객들은 그곳을 한번 찾아보기를 원하고 새로 개업하는 의원 이름을 실로암으로 짓는다. 아름다운 시의 제목으로도 삼는다. 오래전 창영교회학교 고등부의 주보 이름도 “실로암”이었다. 그런데 기자는 두차례의 성지순례에도 실로암을 찾아가는 기회를 놓쳤었다. 베드로 회개기념교회를 방문하면서 인근에 실로암 연못이 있으리라 짐작하면서도 관광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처지라 속으로 안타깝게 여겼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 298장은 실로암을 노래한다.
 <1절> 실로암 샘물가에 핀/한송이 흰백합/한떨기 향기 풍기는/샤론의 장미꽃
 <2절> 평화의 길을 따르는/순진한 어린이/주님을 믿는 그마음/거룩한 꽃이라
 <3절> 주님의 길을 따르는/하나님 자녀는/그사랑 안에 영원히/빛나게 살리라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이 찬송은 매우 아름다운 시어로 작사되어 있다. 예전 교회학교 초등부를 맡아 지도하던 시절에 많이 불렀다. 그러나 가사에 나오는 “실로암 샘물가에 핀 백합”이나 “샤론의 장미” 같은 묘사는 이스라엘의 풍토와는 결코 맞지 않는다. 실로암도 그런 곳이 아니다. 실로암은 장미가 피는곳이 아니며 샘물이 아니라 인공의 아주 작은 저수조일 뿐이다. 다만 주님을 믿고 그 길을 따르는 순진한 어린이 마음이 될 때 실로암은 아름다운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4분의3박자 노래에 “조금 빠르게 불러야 한다.”고 서두에는 적혀 있으나 절로 조용하고 기도하듯 간절하게 불려지는 찬송가이다.
 “실로암 샘물가에 핀”의 찬송가 298장은 영국교회의 주교였던 레지날드 히버가 지었다. 영국의 6대 찬송가 작가의 한사람이던 그가 1811년에 작시하여 이듬해 크리스챤 옵저버 4월호에 “어린이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던 어린이 찬송시이다. 그는 이전의 찬송시들이 문학적으로 뒤떨어졌을뿐 아니라 너무 신앙적 권면에 치우졌다고 판단 그러나 복음주의적 찬송시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많이 썼다. 그가 살았던 시기 19세기는 예술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낭만주의를 중시하는 시절이었다. 현행 찬송가에 298장 외에 그의 찬송시 “거룩 거룩 거룩(9장)”과 “주 예수 우리 구하려(398)”가 있다.
 그 후 이 시는 영국과 미국의 많은 찬송가집에 실려졌는데 어떤 찬송가집에는 6절로도 4절로도 되어있다고 한다. 이 찬송곡은 원래 죠지 허버트의 “시원하고 고요하며 아름다운 날”의 곡이었으나 1842년 미국의 무명 바이올리니스트 베이커 우드베리가 작곡했다. 그는 미국의 감리교회 찬송가 편집위원으로 있으면서 영국을 방문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과로 때문에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통속적인 스타일은 널리 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따라서 298장 역시 매우 애창되는 찬송이었다.

 한편 찬송가 298장은 1995년의 한국 크리스챤들에게 애잔한 감동을 주는 해가 되게 했다. 즉 그해 봄 신문들이 북한의 지하교회를 보도하면서 손으로 썼다는 성경과 찬송가의 사진을 실었기 때문이다. 사진속의 찬송가는 북한 성도들이 해방 전의 찬송가 가사를 기억 일일이 손으로 적은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저 실로암 물가에 핀 한송이 흰 백합”-즉 298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북한의 지하교회가 보도되었는데 그것은 남한의 선교단체가 날려 보낸 성경구절이 적힌 풍선을 앞에 놓고 울먹이는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들 사진이 실렸던 것이다.
 지금 평양의 교회가 선전되고 있거니와 기자도 2007년 여름 평양에 갔을 때 그중의 한곳인 칠골교회에서 남쪽 성도들만의 예배를 드렸었다. 지금 북한에도 기독교는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째서 지하교회가 있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그리고 어느 것이 참교회인지 쉽게 판단이 갈만도 하다. 자유스럽게 예배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어째 지하교회가 존재해야 하는가.
 이와 연관하여 생각되는 것이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그리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반성이다. 같은 땅 북한에서는 감시의 눈을 피하여 지하에서 손으로 쓴 성경과 찬송가를 보면서 예배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추우면 히타를 틀고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켜고 예배를 드리는 우리이다. 주일날이면 교회 버스가 원근 거리를 실어 나른다. 여름철 연수회라며 시설좋은 해수욕장으로 향하고 대형교회들은 교회와는 별도로 풍광 좋은 곳에 기도의 집을 가지고 있다. 굳이 편한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지만 불편과 고통을 견디어 승리할 때 믿음은 더욱 굳어진다. 50년대만 해도 겨울에는 마세크탄을 집혀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고 톱밥난로로 인해 예배당 안에 재가 날렸었다. 여름철에는 에어컨이 아니라 선퐁기 조차 없었다. 하기수련회에 갈 때에는 각자 침구와 쌀 그리고 땔감을 가지고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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