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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에세이 ⑩-"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관리자
2022.02.10 21:41 1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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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⑩
      제317장  “어서 돌아오오”
      작사  전영택(田榮澤 1894-1968)    작곡  박재훈(朴在勳 1922-  )

 기자가 찬송가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선 몇 편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드렸더니 아내 이인숙 권사의 동료교사였던 오정자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6편의 제371장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말미에 실은 국내인 찬송가 작사 작곡가의 명단을 보는 중에 전영택 목사님의 이름이 있어 반가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목사님이 바로 자신의 외숙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전목사님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분을 생전에 뵙지는 못했었다. 다만 1985년이던가. 성남시에 있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세미나에 입교했을때 같은 입교생이며 모대학의 간호학과장이던 그분의 따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전목사는 1894년 진남포에서 출생 평양의 대성중학교를 다니고 도일하여 1916년 도오꾜의 청산학원 신학부를 졸업했다. 일본에서의 유학시절 전목사는 우리 유학생들과 함께 문학활동을 했으며 귀국하여 김동인 주요한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했다. 그런 한편 기독교계에서 발간하는 간행물에도 꾸준히 소설을 발표했다.
 그 후 1930년 캐나다의 패시픽 신학교를 졸업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의 길에 나섰으며 감리교신학교 교수로도 있었다. 목회자이면서도 사회활동을 많이 하심으로서 목사님은 일반 문단에서 더욱 알려지신 것이다. 그러나 1968년1월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소천하셨다. 목사님의 작품으로는 “혜선의 죽음”등 20여 편이 있는데 그중 대표작은 “화수분” “흰 닭”등이다. 주제가 소박하고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평범하다는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화수분이란 재물이 자꾸 생겨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보배단지이다. 이를테면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에게 가루와 기름병이 떨어지지 않게 한 엘리야 선지자의 경우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전영택 목사는 소설에서 반어적 어법으로 부자가 아니라 벗어나려고 애쓰면서도 그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함을 그리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이신 만큼 그분은 작품에는 현실 보다 영원한 화수분이신 하나님을 바라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이번 편에는 전목사님의 “어서 돌아오오”를 다루었다.
제317장 이 찬송은 1943년 전목사의 시에 박재훈 박사가 곡을 붙인 것이다. 제목에서도 금방 알 수 있듯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즉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찬송은 많은 불신자를 교회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매일같이 이 찬송을 의도적으로 불러 불신 남편을 회개케 한 믿음의 아내들의 실화가 많이 전한다.

 <1절>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오오/지은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주 어찌 못담당하          고 못받으시리요/우리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2절>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오오/우리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밤마다 문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며/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3절>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오오/채찍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우리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이 찬송가를 짓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전목사님이 항상 손자들에게 들려주시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고 전해진다.
 즉 홀어머니를 버리고 집을 나간 자식이 자신의 불효를 뉘우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오니 새벽이 되었는데도 대문이 열려있고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하여 근심된 마음으로 문을 여니 어머니는 앉은 채로 졸고 계셨다. 놀란 아들이 어머니를 깨우며 “어머니 근처에는 무서운 산짐승도 많은데 어찌 문을 열어 놓으셨어요”라고 하자 어머니의 대답은 “네가 나간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너를 기다렸단다. 혹 네가 돌아왔다가 문이 잠겨 있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문을 열어 달라고도 못하고 돌아서면 어쩌겠니”라고 하셨다. 아들은 어머니 무릎에 엎드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찬송가의 곡은 서로 가깝게 지내신 박재훈 박사가 작곡했다. 가사의 내용처럼 곡의 진행이 간절하고 호소력이 있다. 작시나 작곡이 모두 1943년으로 되어있다. 일제의 전쟁 말기의 단말마적인 교회 박해시기이다. 그러니 노래가 본격적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50년대초 6,25전쟁시기이다.
 박재훈 박사는 이 찬송가를 작곡하게 된 유래에 대해 이런 글을 썼었다.
<2차대전중 일본에서 유학중 미군의 폭격이 심하여 평남 강서군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있을때였다. 하루는 평양에서 요한학교 교수시던 전목사님을 오래간만에 뵈었다. 당신의 집에 가자고 하셔서 동행했더니 인쇄되어 있는 시를 내놓으면서 곡을 붙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두주가 지나 멜로디를 적어 가져다 드렸더니 마음에 들어 하셨다. 전목사님은 1935년 봄 작사했다고 하셨다.>
 우리나라 찬송가 발전에 기여한 박재훈 박사는 1922년 강원도에서 출생 평양에서 수학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음악대학 등에 유학했으며 중앙신학교등 서울의 여러 신학대학에서 강의했다. 도미하여 활약하던 중 지금은 캐나다에서 음악목사로 시무중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는 팔순기념 음악회가 있었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한국교회 100주년을 맞아 각 교파 공히 사용하는 하나의 찬송가 즉 “통일찬송가”가 출판되었을 때 우리나라 작사 작곡가의 노래 제317장등 17편이 수록되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의 장로교회 성가집에도 들어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목사님 노래는 가정적인 찬송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305장)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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