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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찬송가 에세이 ⑫-“중앙신학교 교가인 찬송가”

관리자
2022.02.24 02:15 1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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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⑫
      제355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중앙신학교 교가인 찬송가”
      작사  이호운(李浩雲 1911-1969)    작곡  이유선(李宥善 1911-2005)

 2000년 봄 몇몇 중앙신학교 동기 내외가 터키와 그리스 여행 중일 때이다. 바울 선교사의  길을 추적해 보자면서 선뜻 나섰다. 터키의 동부 하란에서 시작 바울의 고향 다시스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아 골로새 초대 7교회 그리고 밧모섬과 아덴 고린도 데살로니가 빌립보 네압볼리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아마 일행이 탄 버스가 가파도키아를 지나 이고니아로 향할 때였을 듯 하다.
 여행초와 달리 며칠이 지난 여유로움에서 였을까.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윤호중 장로의 제안으로 일행이 찬송가 355장을 합창으로 부르기로 했는데 기자는 극구 사양 결국 몇이서만 불렀다. 정든 모교의 교가인데 어째서 그러느냐며 학우들은 지금까지도 나의 고사한 까닭을 의아해 하는데 그 시절 기자는 신앙의 긴 방학에 들어간 시기여서 가식으로 기독교 신자이기나 한 듯 떳떳하게 나서서 함께 부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때나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본 사람들 특히 정치를 지망하는 사람들 중에는 크리스챤이 모인 곳에서는 신자인 듯 불교도의 모임에서는 불자인 듯 박쥐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자는 그것이 싫었다. 그것이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짓이요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여기는 처신에 기자는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찬송가 355장은 중앙신학교 교가였다. 정해진 별도의 교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름받아 나선 이몸”을 교가처럼 불렀다. 기독교인 모두가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몸이요 특히 하나님의 사역에 나서겠다고 결심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신학도의 길이야 말로 “부름 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하는 그대로의 길이 아니던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요구는 어느 때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그 부르심에 시대의 선지자처럼  순응하고 나서는 이가 신학도가 아니겠는가. 부귀와 영화도 마다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온갖 고난을 각오하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증언자로서 곤고하고 외로운 길을 자원하고 나선 이들이 바로 신학도이다.
 실재로 1948년 이호운 목사의 시와 박재훈 선생의 곡으로 된 찬송가가 중앙신학교 졸업기념가로 불려졌으며 이후 타 신학교에서도 졸업가로 불려 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가 1966년 찬송가 개편시 이유선 교수의 곡이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교회마다 임원 임명식때 부르는 등 우리나라 찬송가 가운데 가장 애창되는 찬송가가 되었다. 즉 찬송가 개편을 위한 모임의 자리에서 개편 찬송가에 실린 국내 작가의 찬송가중 가장 많이 불리우는 찬송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어느 한분이 “부름 받은 몸”이라고 하자 회중의 모두가 동의했다고 한다.
 이 찬송가는 1950년 3월 이목사가 미국 께렛 신학교 재학때 지은 것이라고 하나 박재훈 박사의 회고로는 이호운 목사가 미국유학길에 오른 1948년인가 1949년 떠난 지 한 달 남짓해서 미국에서 보내온 편지에 이 귀한 찬송시 “부름받아 나선 이몸”이 동봉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시의 동기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다. 다만 아마도 헌신예배용으로 작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전해질 뿐이다. 그러나 어떤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보아 평소에 그가 주님의 부르심에 얼마나 감사하고 충성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지를 잘 알수있다.
 그는 1911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출생 감리교신학교와 미국 텍사스주 남감리교대학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로서 강원도 화천교회와 황해도 옹진교회에서 시무했으며 중앙신학교와 감리교신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한때 중앙신학교 재단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한창 일할 시기인 1969년 58세를 일기로 급서했다.
 이 찬송가에 대해 원래 작곡했던 박재훈 박사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 목사님의 “부름받은 몸”은 한국 찬송사 사상 처음되는 본격적인 찬송가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싶다. 이것은 우리가 잘 아는 19세기 미국 찬송가 “겸손히 주를 섬길 때”와 비슷하면서도 그 깊이와 표현에 있어 훨씬 값진 노래이다. 복음성가 성격을 탈피한 순수한 찬송가로서 처음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유선 교수는 1911년 평양에서 감리교회 초대 목사인 이익모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재고보와 연희전문을 졸업 미국 시카고 아메리칸 음악학교와 대학원을 나온 후 우리나라 음악계에 이바지했다. 특히 그는 교회 성가대의 지휘자로 평생을 봉사해 왔다. 이 교수는 “부름받은 몸”의 작곡 경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슨 영감을 받아 쓴 것이 아니요 피아노 앞에 앉아 마음속으로 멜로디가 흘러나와 거침없이 한 번에 곡이 완성되었다. 이 곡 처럼 멜로디가 한 번에 그려진 일은 평생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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