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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③

관리자
2021.12.16 21:31 1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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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③
      제429장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작사  존 헨리 뉴맨(1801-1890)  작곡  존 바커스 다이크스(1823-1876)

 2007년 봄 창영교회 성지순례단의 일원으로 이스라엘에 입국하던 때였다. 인천을 떠난 지 15시간의 여로가 전에 없이 무척이나 지루했다. 기항지 타시겐트에서의 트랜스 신세였던 다섯시간이 길었던 탓인 듯 했다. 일어나 통로를 비집고 걸어보기도 하고 억지로 잠을 청해도 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성경요절을 암송하면서 시간을 단축해보려고 했으나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마침 기창으로 서쪽 하늘의 붉은 저녁노을이 비쳤다. 그렇구나. 필자는 찬송가 429장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를 잊고 있었음을 스스로 생각해 냈다. 이 찬송을 왜 잊었을까. 곧 몇 번이고 입속으로 거듭 불렀다. 안절부절 못했던 조바심이 차츰 편안해졌다. 어느새 저녁노을도 가시고 창밖이건 기내이건 어두움이 짙어지고 있었다.
 찬송가 429장은 우리 찬송가 550여곡중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다. 3개절의 가사가 구구절절 오랜 방황 끝에 모교회로 돌아온 지금의 기자의 처지에 합당한 내용이어서 좋다.
기자는 매일 아침 이 찬송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전에 방탕하게 지낼 때 교만하여/맘대로 고집하던 이 죄인 사하소서/내 지은 죄 다 기억 마시고/주 뜻대로 늘 주장하소서>-2절
 <이전에 나를 인도하신 주 장래에도/내 앞에 험산준령 당할 때 도우소서/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기쁨으로 내주를 만나리>-3절

 찬송가 429장은 영국의 저명한 저술가요 원래 영국교회 성직자였던 헨리 존 뉴맨의 노래이다. 그는 1801년 런던의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몸담고 있던 교회가 무기력하고 신앙적 열정을 보여주지 못하자 그 역시 번민속에 방황하던 시절 시편 107편14절의 말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에서 영감을 얻어 한편의 간절한 시를 썼다. 이 찬송가는 어둡던 시절이던 19세기 영국의 많은 크리스찬들의 심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32세때인 1833년 여름 그는 지루한 항해중에 있었다. 로마의 가톨릭 지도자를 찾아가 고민을 해결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열대성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영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얼마나 위급했던지 동행인이 유언장을 남기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의 번민은 이러했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도산한 실업자등 영국사회가 많은 문제와 혼란 중에 있었음에도 교회는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며 교회가 점차 세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혼란한 시기에 옥스포드 대학을 중심으로 일단의 신앙부흥운동 이른바 “옥스포드 운동”(혹은 “소책자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선봉이었던 뉴맨은 초대교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며 교회에 대한 세속의 침입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국에 대한 소책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각계로부터 옥스포드 운동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고 그의 집필과 소책자 간행도 금지 당했다. 옥스퍼드인들은 차츰 로마교회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도 가톨릭 교회로 돌아가는 수 밖 에 없다고 생각 로마를 방문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귀로에 아프리카에서 오렌지를 싣고 마르세이유로 향하는 배를 얻어 탔으나 사르디니아와 코르시카 해협에서 배는 멈추어 방향을 잃고 말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짙은 안개 속에 갇힌 것이다. 날씨마저 무더워 안절부절 못하고 갑판 위를 헤매던 뉴맨은 선장을 붙들고 항의도 하고 언제나 가게 되느냐며 그리고 바람을 일게 해 보라고 억지 푸념도 했다. 그때 늙은 선장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 번에 한걸음씩 한 번에 한걸음씩 바람을 받아 항해하는 우리는 바람을 기다리는 것을 배워 왔다오”
 무덥고 지루한 하루가 저물고 밤은 더욱 끈적끈적했다. 갑판에서 다시 선장을 만났을 때 안개가 걷힌 듯 하늘에는 작은 별빛이 보였다. 선장이 말하기를 별이 빛나고 있으니 바람만 분다면 별빛을 따라 밤에라도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작은 별빛이라는 말에서 뉴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빛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며 그 빛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 그런데도 지금껏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밤으로 바람이 일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배는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선장이 말한 “한 번에 한걸음”과 “별빛”에서 은혜를 받은 “빛 되신 주”가 1절을 시작하고 항구에 도착하는 기쁨이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주를 만나리”로 3절을 마감하는 것이 이 찬송의 구성이다.

 이렇게 해서 쓰여진 시는 여러 찬송가집에 실리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찬송시가 되었다. 오랜 시일이 지난 후 빅토리아 시대의 찬송가 작곡가들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는 다이크스가 1865년 잡지를 뒤척이다 이 시를 발견하고 감동되어 곡을 붙였다. 그런데 다이크스 역시 안개 낀 테임스 강변을 걸으면서 악상을 떠올렸다고 하니 작사 작곡 모두 안개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셈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때로는 안개 속을 헤매듯 고민에 빠져 방황할 때가 있으며 때로는 그 고민이 유익할 수 있다. 고민과 방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 깊은 신앙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고민은 문제를 해결해 줄뿐 아니라 처해진 경지에서 한층 높여준다. 특히 신앙인은 수시로 번민 하나님께 간구하여 답을 구하는 단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는 “검은 연기 속에서 광명의 불길이 일어나듯 의심과 고민의 검은 연기 속에서 영의 불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정직한 사람이기에 오래 고뇌했던 뉴맨은 경건한 교회의 의례와 성경의 권위를 신봉하고 스스로의 영적 평안에 관심이 깊은 순수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결국 1845년 카톨릭으로 개종 더블린에 세워진 가톨릭대학교 학장이 되었으며 1877년 추기경에 올랐다. 그리고 아름다운 많은 시와 글을 남겼다. 이 시들이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낭만파 음악가 에드워드 엘가에 의해 크리스찬의 소망을 강하게 표현하는 오라토리오 “게론티우스의 꿈”이 되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찬들에게 애창되는 찬송가 429장이 얼마나 은혜스러운지는 1892년 미국 시카고의 종교대회에서 개막 찬송가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신구교와 유대교 힌두교등의 천차만별한 지도자들이 모인 회의에서 이의없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기자는 찬송가 해설을 강의하며 눈물을 흘리시던 은사 박재훈 박사의 모습을 오래도록 잊을수가 없다. 귀항의 기쁨을 노래한 3절의 끝부분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주를 만나리>의 가사에 그분은 감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년전 외화 “쥬드”를 보았는데 여주인공의 교회를 찾아 참회하는 장면에 잠시 429장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와 기자를 감명케 했었다. 대학의 도시 크라이스트민스터를 동경 유망한 청년이 어렵게 이루어진 사촌과의 결혼생활로 불행에 빠진다는 줄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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