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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찬송가 에세이 ④

관리자
2021.12.22 12:35 1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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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찬송가 에세이 ④
      제444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작사 조셉 헨리 길모어(1834-1918)  작곡 윌리엄 베첼더 브레드베리(1816-1868)

 <전 세계적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예수가 거느리시니” 찬송은 뉴햄프셔주 지사의 아들이요 목사인 조셉 H 길모어 박사에 의해 1862년3월26일 브로드가와 아치가 모퉁이 서북쪽에 있던 제일침례교회에서 설교를 한 후 충성스런 왓슨 집사댁에서 쓰여 졌는데 그 교회와 집사댁이 바로 이 건물이 세워진 곳에 있었다. 더 유나이티드 가스 개발회사는 그 찬송의 아름다움과 명성을 높이 인정하고 그 저명한 작사자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1926년6월 첫날에 이에 영원한 기록을 남긴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브로드 거리에 소재하는 유나이티드 가스 회사의 사옥 벽에 붙여진 기념동판 내용이다. 그곳이 “예수가 거느리시니”-즉 찬송가 444장이 작사된 자리였음을 기념하여 붙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 독립의 도시요 그로 인해 기념물이 많은 필라델피아를 찾는 방문객들은 정작 이 기념판은 잘 모른다. 독립기념관과 자유의 종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찬들에게는 잊어서는 안 될 장소이다.
 이 기념 동판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목사님의 성의에서였다. 원래 유나이티드 회사의 사옥이 들어서게 될 위치는 제1침례교회의 노후 건물이 자리했던 곳인데 현대식 회사 건물을 짓기 위해 낡은 교회당이 헐리는 현장에서였다.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 교회는 유명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의 찬송가가 바로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회사측에서는 비록 건물은 보존하지 못할 망 정 위치만이라도 영원히 지켜야겠다고 판단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회사의 벽면에 사연을 적은 동판을 부착 헌정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어찌 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아무리 유서깊은 건물이나 흔적이라도 내 땅에 내 건물을 짓는데 무슨 상관이냐면서 마구 헐어 뭉게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장의 찬송가를 작사한 곳에 불과(?)했음에도 기념판을 세워주는 건물주의 아량. 이것이 성숙한 미국사회의 성실성이며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유이다.

 “예수가 거느리시니”의 작사가 길모어 박사가 이 찬송가를 짓게 된 데는 시편23편과 관련이 있다. 1862년3월26일 필라델피아 침례교회의 삼일 예배 때 설교하면서 시편23편을 본문으로 설교했는데 전에도 몇 번 시편23편으로 설교한 적은 있었지만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자신이 전하는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남북전쟁의 암담했던 시기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지없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데서였다. 그는 예배가 끝난 후 왓슨 집사댁에서 모인 교우들과 설교에 대해 담소하면서 설교 원고지의 이면에 연필로  느낀 대로 찬송가 가사를 적어 옆의 사모에게 주고는 이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여러 달이 지난 후 사모는 보스턴의 한 지방신문에 이 찬송시를 투고했다. 그리고 신문을 본 작곡자 브레드 버리가 1864년 후렴을 약간 고쳐 발표했다. 이 무렵의 미국은 교단별로 찬송가가 활발히 작곡되고 교회학교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그러나 정작 작사한 목사님은 아름다운 곡이 붙여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교회에서 새로 모시게 될 담임목사의 후보로 설교하러 갔다가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을 듣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기에 원래의 가사 1절만 소개해 본다.
  <주가 날 인도한다. 아 복된 생각이로다
  이 하늘의 위로를 가득히 담은 말씀일세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어디에 가있든
  역시 날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시라
  <후렴>주가 날 인도하시네 주가 날 인도하시네
  주의 손이 날 인도하시네
  그의 손으로 날 인도하시니

 우리 창영교회는 지난 2003년 기독교사회복지관을 인수함으로서 인천시내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확보한 교회가 되었다. 경내에는 운동장과 잔디밭 그리고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유서깊은 옛 선교사의 숙소가 소재한다. 이곳은 한 세기 전 미국인 선교사들이 에즈버리라고 이름한 인천지역의 선교기지였다. 그럼에도 교회 성도들에게는 상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문화재”라는 막연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인천시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세운 설명문이 서있을 뿐이다. 그것도 설명이 맞지 않는다는 문화계 인사들의 지적이 있다. 이렇게 한 세기전의 의미 깊은 흔적이 역사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계제에 남자 선교사의 숙소가 있었던 인천세무서 경내에도 함께 역사의 고증에 합당한 안내판이 세워졌으면 하는 기자의 생각이다. 찬송가가 작사된 장소에 조차 기념동판을 설치하는 나라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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