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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보내며 "크리스마스 씰"

관리자
2021.12.23 01:29 9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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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우드 홀의 크리스마스 씰"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하는 증표이다.
일종의 성금운동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발행되며 우표와 함께 우편물에 붙여진다.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은 1904년 덴마크에서 비롯되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이던 “아이날 홀벨(Enar Holbell)”이 연말을 기해 우체국에 매일같이 쌓이는 많은 우편물을 보고 우편물마다 적은 값으로 살 수 있는 우표모양의 씰을 붙이면 결핵으로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구할 수 있는 결핵퇴치 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당시 국왕인 크리스찬 9세에게 건의하여 국왕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1904년 12월 10일에 세계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었다.
그 후 크리스마스 씰 운동은 세계 여러나라로 전파되어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 이상에서 발행하여 결핵퇴치를 위한 중요한 재원모금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시작한 분은 서양인 선교사이다.
초대선교사의 아들인 “셔우드 홀” 박사로  한국에서 태어나신 분이다.
부친인 위리엄 제인즈 홀은 청일 전쟁 중에 만연한 전염병 치료에 전념하다 자신도 쓰러진 분이다. 모친인 로제타 홀의 의료선교는 인천의 기독병원과도 연관이 있다.
셔우드 홀리 우리나라의 결핵퇴치에 헌신하게 된 데에는 남다른 동기가 있다.
모친의 조수였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된 에스더 김이 결핵으로 죽은데 충격을 받고서이다. 그 때 소년 셔우드 홀은 한국에서 결핵을 퇴치하는데 앞장서기로 결심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하여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해주에 “해주구세병원”을 세우고 수많은 결핵환자를 치료했다. 당시는 환자가 많았으며 특히 청소년 환자가 많아 결핵이 망국병이라 불리우던 시기였다.
셔우드 홀리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은 남대문이 그려져 있다. 1932년의 일이다.
그 후로는 그네뛰기, 연날리기, 팽이놀이 등 우리나라의 풍습이나 놀이의 그림을 그렸다.
그때 일제의 방해는 가지각색 이었다. 심지어 서기를 일본연호로 고치라고 인쇄된 씰을 압수하기도 했다. 일제의 만행은 우표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다.
셔우드 홀의 처음 도안은 거북선이었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넬슨의 승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듯이 한국의 어린이들도 이순신장군의 해전사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도안은 일본인들의 방해를 받고 결국 거절되었다.
결국 한국의 방어를 상징하는 남대문으로 정했다고 셔우드 홀은 “조선회상”에 적고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 씰은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혼도 담기게 되었다.
지금은 모바일 씰로 발전되어 왔다. 항상 한해의 마무리를 하는 시기가 오면 고마웠던 분들이 생각난다.
모바일 크리스마스 씰을 보며 결핵퇴치에 헌신한 선교사들의 수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 모바일 크리스마스 씰에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국제중앙신문/이휘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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