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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이단에 미혹되지말자!

관리자
2021.11.29 05:38 32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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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이비이단에 미혹되는 이유
왜 이단에 이끌리는가?
이단이나 사이비집단에 미혹된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이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미혹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런데 아주 단순한 이유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 즉,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기대감’인데  성경은 이 종교성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
이런 것이 근본원인이다. 이러한 종교성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와 동일한 신앙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종교성은 성도들로 하여금 새로움을 추구하는 욕심과 더불어서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종교성은 그가 특별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종교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믿는 믿음도 일종의 종교성에서 근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바탕과 근거가 된다.

,즉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관을 따라 생활하는 영적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기독교의 신앙이 아니라하더라도 혹은 기독교의 신앙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신앙을 찾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단이나 사이비집단은 이러한 사람들의 종교성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특별한 체험이나 초인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초인적인 부분을 동경하는 인간의 심리의 한 부분을 그들의 교주에게 접목시켜두기 때문에 사람들의 종교성으로 말미암는 초인에 대한 동경심을 충족시키게 된다.

그래서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면 집착을 하게 된다. 이러한 집착은 학력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고학력자들이 더 깊이 빠지고 자신의 논리성을 상실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의사, 교수, 지식인, 심지어 일부 잘못된 목회자들마저도 얼마든지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유혹에 쉽게 미혹될 수 있는 것이다.

거짓의 아버지 마귀(사단)가 사람들을 진리로부터 돌이킨다. “사단은 이단 교주를 배후 조종한다. 사단도 위장술로 자신을 가장한다. 예를 들어 통일교는 “참가정실천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참가정은 문선명을 아버지로 하는 가정을 일컫는다. 구원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교단명을 사용함으로 그들의 정체를 위장하고 있다. 신천지는 “(사)만남”이라는 단체를 통하여 많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미혹하고 활용하면서 포교했고, 심지어 정치인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단체행사에 축사를 하게 함으로 내부 단결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안상홍 증인회의 분파 가운데 한 곳은 “봉사활동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단체가 대단히 사회에 유익한 단체인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서도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이단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약속한다.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개인적인 만족과 행복과 의미를 찾아 방황하다가 이단에서 제시하는 ‘건강하지 못한 희망’의 소리에 비판의 눈길이 아니라 그냥 수용해 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들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고 약속한다. 몰몬교는 “가정은 지상의 천국”이라는 슬로건으로 가정행복을 약속하고 있고, 안식교는 건강한 식생활을 약속하며, 구원파의 일부계파는 “집단생활을 통한 생계보장”을 약속하고 있다. 

급격한 사회변화와 계층 간 갈등으로 인한 미래공포증과 사회불안 즉, 공해, 핵전쟁의 위협, 인구폭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람들은 이단의 거짓말을 믿게 된다. 기독교 사회학자 로날드 엔로스는 이단은 중요한 사회변화나 문화적 변혁기에 일어났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컴퓨터 등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 사회가 비인간화되어 갈 때 사람들은 “혹세무민하는 이단”이 말하는 “안식처와 피난처”로 도피하게 된다. 과학으로 초자연세계와 영성을 부정함으로 극단적 신비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

정통교단에서 성령수술, 기복적 무속형태의 방언, 영서, 직통계시로 순진한 양들을 미혹하고 있는 곳의 출입을 금하는 이유는 이들 집단의 잘못된 기복적 신비주의 때문이다. 

증가하는 이혼, 잦은 이사와 전근, 성도덕의 문란, 자녀교육에 자신을 상실해 가는 부모들에 의해 특징 지워지고 있는 불안정한 현대가정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된 사랑의 공동체”를 찾게 만든다. 이단은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돌봄을 제공한다.

정통교회의 분열과 일부교회의 극단적인 자유주의사상이 사람들로 이단의 확실한 입장을 따르게 한다. 우리 교회가 무력하고 부패하며 분열할 때 이단이 성행한다. 정통교회에서 성도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순진한 양들은 신천지의 성경공부나 여러 사이비에 속한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에 미혹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에 미혹되는 것은 사람들의 종교성과 이단들의 위장전략, 거짓말과 더불어서 사람들의 불안감, 사회의 비인간화, 교회의 분열,

불안감, 사회의 비인간화, 교회의 분열, 극단적인 자유주의의 팽배로 성경 말씀에 대한 갈급함, 소외감 등의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단과 사이비는 결국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고 바른 말씀이 선포되지 못한 결과물이고, 마지막 세대에 대한 주님의 예언의 결과이다.
 
어떤 사람이 미혹되는가?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이단과 사이비에 미혹되는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이 미혹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만난 사람들의 경우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원인들이 있다. 

1) 소외감
필자가 만난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경우에 가장 큰 원인은 “소외감”이었다. 가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상실하거나 교회에서 느끼는 소외감, 성장기에 경험한 소외감 등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외감이 누가 소외를 시켜서 소외를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함께 살아온 가족이나 교회에서 자신이 스스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자신만 미워하고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소외감과 외톨이로 전락되는 경우도 있다.
이단과 사이비집단은 이들에게 대리만족의 효과를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미혹되는 것이다. 

2) 의존적 성격
이러한 성격은 대부분 성장기에 형성되어진 경우가 많이 있다. 현재 우리 교회들에 있는 청소년들을 보면 이러한 의존성이 강한 학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흔히 말하는 ‘마마보이’이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가정에서 모든 일의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성장을 한 경우나 너무나 방임적이고 허용적인 부모 아래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함에 있어서 느끼는 불안감과 실패의 경험들이 결국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 앞에서 쉽게 무너지게 된다. 

3) 불안한 가정생활
‘신천지집단’이나 ‘안증회(하나님의교회)집단’에 피해를 당한 경우의 대부분은 가정의 문제가 많이 있다. 불안한 가정생활이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미혹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다.

 남편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내들과 아내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남편들이 이단에 쉽게 미혹되고 있다. 어느 부인의 경우에는 15년 년하의 사이비집단의 강사 유부남과 동거하면서 ‘참된 가정을 만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미혹된 이들과 대화에서 그들에게는 자신에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가족들이 무조건 믿어주고 이해해 주는 ‘수용적 욕구’나

‘친밀한 가족, 행복한 가정에 대한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은 불안한 가정생활이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게 미혹되는 원인이 되고 미혹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집단은 하나의 ‘대체되어진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 집단생활을 많이 하게 된다. 
 
4) 현대인의 위기 
오늘의 시대는 위기의 시대이다. 사회적 불안감이 가중된 시대이다. 요즘은 고등학생만 되어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나선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학생은 학업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불안감과 위기가 학생들도 생업의 전선으로 내 몰고 있다. 

시대적인 현상으로 말미암는 실직의 위기, 경제적위기, 가정파탄의 위기, 건강의 위기, 사회적 병리현상적인 위기 등이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미혹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5) 신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신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과 교역자에 대한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들은 사이비집단의 밥이다. 

그래서 신천지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신학원을 운영하면서 ‘이곳에서 배우는 것은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 수준의 학문이다. 신학박사들도 배우고 나간 것이다.’는 등의 비 논리성을 갖춘 논리를 주장하면서 미혹하게 된다.

일반 성도들이 나도 신학을 배우고 있다는 착각을 가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도 조금만 잘하면 전도사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동경심을 활용하여 사이비집단의 교리를 스스로 세뇌시키게 만드는 것이다. 

6) 성경의 무지와 교만한 마음
교인들에게 질문해 보라. 1년에 성경을 1독 이상하는 성도가 얼마나 되는가? 그 수가 너무 미미하다. 즉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경공부에도 열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참석해서 듣기만 하지 정말 교회가 성심성의껏 준비한 성경공부에 열정으로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성경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사이비집단의 작전으로 만든 성경적인 질문들에 쉽게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또한 이처럼 많은 과정의 성경공부를 수료했고, 교회에 오래 다녔기 때문에 스스로 성경박사라는 교만한 착각에 사로잡힌 성도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사이비집단의 성경적인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게 된다. 
사이비집단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곳은 참으로 성경적인 곳이다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무지와 교만의 사이비집단을 향한 지름길이다. 

7) 각종 콤플렉스
교인들에게는 여러 종류의 콤플렉스가 존재한다. 그것이 돈의 문제일 수도 있고, 학력의 문제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미혹되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는 말이 제일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준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일부 잘못된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았다는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문제가 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는 주장은 “나는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고, 복음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는 주장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나아와서 모든 것을 맡긴 사람은 결코 상처를 받지 않는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충분히 치료하시기에 충분한 분이심을 믿지 못하기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바른 신앙은 신앙의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처럼 이단과 사이비집단은 신학적으로 성경적인 교리의 혼란을 조장하고 심리적으로 개인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악용하여 포교하고 있다. 

우리 교회들이 이러한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전 방위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말아야 한다. 이단과 그 집단들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기관들을 통하여서 실제적인 연구와 대책을 개발해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마 7:15)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 사도께서는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29-30)고 경고하셨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라는 울타리와 선한 목자의 돌봄을 떠나면 언제나 흉악한 이리에게 끌려 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아무도 자신을 “무면허 돌팔이 의사”에게 진찰을 받거나 수술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성경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성경도 모르고, 신학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성경해석이나 설교가 내 마음에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되어진 것이지 알 수 있는 측량도구가 되는 것이다. 바른 신앙에 굳게 서야 한다. 이에 사도 베드로께서는 우리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하셨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베드로후서  3장 17절

자료출처 경찰종합뉴스
 
박기성 목사
▲ 예드림교회 담임 
▲ 한국교회이단사이비대책  목회자 협의회 대표회장
▲ 예장합동, 이대위 전문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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